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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노자이야기] 붓다의 관점으로 풀어 쓴

[노자 도덕경(8)] 33장 지인자지 자지자명 知人者智 自知者明 - 명상과 불교수행으로 풀어 쓴

by 마법사엘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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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지인자지 자지자명 知人者智 自知者明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이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지만,  힘써 행하는 사람이 뜻(志)을 얻는다.

 그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지만, 죽더라도 (도가) 없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

 

 

위 번역문의 필자인 김원중 교수는 본인의 저서인 <노자 도덕경> 본문에서 '~지만'인 구절에 대해 문맥을 고려해 임의로 번역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장 문장들의 앞절과 뒷절을 잇는 접속어는 '~지만' 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로 보면서 앞절보다 뒷절의 내용이 더욱 고차원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도덕경의 1장, 4장, 8장, 12장... 과 같이 중간의 여러 장들을 건너뛰면서 글을 진행하는 이유는 도덕경의 상당히 많은 장들이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장들은 상대적인 두 개념들을 포용하는 도道의 성질을 설명하고 있고, 또 다른 몇몇 장들은 치세, 왕이 익혀야 할 자세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대부분의 내용들은 수행과 비움의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아서 건너뛰는 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도덕경 33장의 내용에서 앞구절들은 대체로 세상에서의 처신을 언급하고 있다. 남을 아는 사람은 처세를 잘 하는 사람이다. 남을 잘 알아서 처세에 능한 사람보다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낫다. 여기서 대비되는 단어들은 지혜를 뜻하는 지智 와 명明인데 노자에게 있어서는 지혜智보다 밝음明이 보다 차원 높은 의미를 가진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본 이라면 누구나 이 밝음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밝음은 우리가 흔히 긍정적인 의미를 비유적이고 표현할 때의 밝음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밝음이기도 하다. 깊은 의식에는 평상시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찬란한 빛이 있다. 그 의식에 접근하고 하나가 될 때 이 빛은 엄청난 밝기로 작열한다. 물질적 현실적 차원에서의 모든 빛들, 가장 밝게 빛나는 태양빛조차 그 빛에 비할 바가 못된다. 

 

떠올려보자. 자신이 가장 행복하고 황홀했던 순간을. 그러기가 여의치 않다면 그저 상상만 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는 자신을 떠올려보자.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도 없다.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온화한 기후의 자연 속에서 화창하고 맑은 햇빛을 쪼이고 있다고 느껴보자. 날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눈을 감으면 눈 앞은 불그스레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편안하고 평화롭다. 밝고 화창하다.

 

밝다...... 그런데 이런 밝음이 우리의 모든 밝음은 아니다. 이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장대하며 전지적(全知的)이고 영적인 빛이 우리들 모두의 의식 아래 (무의식에, 잠재의식에) 존재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뿐, 누구나의 의식은 이러한 빛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또한 근원(도道)과 이어져있다. 서로 다르지 않은 어떤 것을 노자는 도道라고 부르고 붓다는 탐진치의 비움과 버림을 통해 열반에 이른다고 설법하였다. 많은 이들이 도道와 열반, 혹은 불성이 다른 것인줄 알기에 필자는 이런 오해를 줄이고자 근원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志)을 얻는다.

 그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고, 죽더라도 (도가) 없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

 

'~지만' 이라는 문구를 '~고' 라고 바꿔보았다. 앞구절도 모두 인정하게 된다. 적당히 처세도 하지만 바른 명상과 수행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도 좋다. 힘이 있어 남을 이길수도 있고, 바른 습관은 늘리고 악습은 줄이면서 정정진할 필요도 있다. 매사에 부족하다고 여겨 집착하는 것보다 스스로 가진 것을 누리고 만족할 줄 알면 부유하고, 그러면서도 힘써 행함으로써 목표를 이루는 것도 좋다.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있다. 하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바탐업(bottom-up) 방식이라고나 할까. 탑다운 방식은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대로 철저히 실현해 나아가는 방식이다. 최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이미지화하는 것을 비전(vision) 이라 부른다. 자신의 의지대로 계획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반대로 바탐업 방식은 현재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살아가다보니, 어찌어찌 하다보니 기회를 만나고 큰 성과로 이어질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인연이고 '운명'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정치인은 일찍부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다. 또 누구는 그런 목표를 가졌지만 될 수 없었다. 또 어떤 이는 그런 큰 목표를 가진 적이 없지만 대통령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야말로 '운명'이다.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결국 운명에 따르는 사람이다. 보다 열린 마음과 자세, 비움과 버림으로 올바른 수행자적인 태도로 살아갈 때 '진정한 자신'을 향한 길은 열리게 된다. 반대로 매사에 고정관념과 고집, 욕심과 작은 자아의 마음만을 따라 선택할 때 진정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잃게 된다. 

 

사람들은 도(와의 연결성)를 잃었기 때문에 살아 생전 다 하지 못한 미련, 집착 등을 잡으려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태어났기에 늙고 병들고 죽는 근본적인 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반대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탐진치를 비우면 도道와의 순수한 합일이 가능하므로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이 없게 될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죽더라도 도를 잃지 않으면 괴로움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 천수를 누린다는 표현과 무엇이 다를까?

 

 

- 明濟 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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