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평생 글쓰기를 돌아보며 - 10대와 20대까지 (feat. 글쓰기의 심리치유 효과)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써낸 책은 4권, 그 외 오래 전에는 대기업이나 공사기업의 사내 잡지 글 의뢰를 받아서 쓴 일도 자주 있었고요) 그리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닙니다.
잠깐 말 나온 김에 저의 글쓰기와 연관해서 생각나는 기억들이 있네요.
고등학교 때 교지에 시를 써 낸 일이 있답니다. 반장이 뜬금 없이 교지에 낼 시를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문학소년?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 시가 괜찮았나봐요. 어느날 밤 교지 편집하시는 국어선생님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서 어느 구절에 대해서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고교 교지에 실린 시 한 편에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만 기분은 좋았겠지요.
대학 때는 굉장히 감상적인 면이 많이 떠올랐던 듯합니다. 시를 많이 썼습니다. 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중학생 때부터 시를 많이 썼네요. 늘 시 쓰는 노트가 따로 있었어요. 중학교 때 많이 썼던 것 같고 대학 때도 특히 2학년 때까지 많이 썼던 기억이 있네요. 대학 때 나름 공부를 미친놈처럼 했었는데 도서관에 맡아서 앉던 자리에 두었던 시노트만 사라진 기억이 있어요. 다른 책들은 멀쩡히 있었는데 말이죠. 이후로는 시를 안쓴 듯합니다.
대신에 소설을 썼습니다! (허허허)
대학 3-4학년 때 사랑했던 후배가 있었어요. 어쩌다가? 사귀게 되었지요. 사귄지 100정도 지나서였나, 좀 떨어진 타지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런 사실에 대해서 전혀 말을 안했었던 거에요. 이상한 아이였어요. 근데 나의 마음은 온통 빼앗겨버린...
(요즘 고전을 좀 읽어보자 하고, 뒤늦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읽는 중이랍니다 ㅎㅎ 젊은 베르테르...는 일본식으로 짬뽕된 번역의 이유로 왜곡된 것이고 이보다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 이 적절한 제목이라네요! by 홍진호 교수)
아무튼 사귀는 것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이상한 관계가 굉장히 오래 갔습니다. 차라리 나에게 딱부러지게 이별을 선언했다면 정리하기도 쉬웠을 것을...
이상하고도 어정쩡한 관계는 대학원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난 너무나 두려웠답니다.
불을 꺼야 하는데 도저히 꺼지지가 않는 거에요. 혹시 이 불이 평생을 가며 꺼지지 않으며 계속해서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글로 쓰기 시작했어요.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1995년도였던가, 그 당시는 인터넷이 없었고 (있어도 대학원 연구실랩에서 해외 논문 검색이나 잠깐씩 하는 정도?) 전화모뎀으로 접속하는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이 있던 때였죠.
하이텔에 매일 일정량씩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네요.
제목은 <내 사랑을 얘기해줄까> 였는데. 지금 쓰며 보니 손이 오그라드는 듯. 허허허.
마치면서 전체적인 분량은 중편 소설 분량 정도? 아무튼 기본적으로 편당 조회수가 수백 이상 나왔었고 (당시로써는 꽤 좋은 반응) 매일 독자들에게서 여러통의 팬레터를 받았고(주로 여자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는 둥 하는 오지랖 메일 ㅎ) 며칠 있으면 군대가는데 언제 끝나냐, 군대 가기 전에 빨리 연재를 마감해달라는 독촉 메일도 받았답니다.
최근 읽은 책중에 홍진호 교수의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 글과 관련된 해결되지 않았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풀어내고 치유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이 있었는데요. 저 글을 쓸 때의 저의 상황과 심정이 딱 그에 부합되는 케이스였죠.
저는 그 글을 씀으로써 그 사랑의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었답니다.
그 글은 중편 정도 분량이었다고 했는데요. 전에는 시를 많이 쓰면서 짧은 호흡의 글들에 익숙해졌었다면 이 글쓰기를 통해서는 길게 전개하는 글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을 덤으로 얻게 되었어요. 이후로 자신감을 얻은 저는 평소의 오컬트 지식을 동원해서 환타지 픽션인 <아리아드네를 위한 발라드> 라는 소설을 써서, 역시 하이텔에 연재를 하게 됩니다 - 이 제목도 지금보니 왜 오그라드는지. ㅎㅎ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완독해주신 독자들도 계셨지만 전체적인 반응은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주제가 그래서인가? (라고 자위를;;;)
여기까지가 저의 20대 시절의 글쓰기와 관련된 에피소드였답니다.
......
기억을 돌이켜보니 이후로 30대, 40대의 글쓰기들은 성격이 많이 달라졌네요. 제 자신이 발전되고 성숙되면서 이어진 당연한 결과였겠지요.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책을 쓰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요.
가끔 각 잡고 (!?) 책 쓰듯이 글을 써서 올린 경우도 자주 있었는데 글이 길어지고 한편으론 내용이 깊어지면서 어려워지다 보니 반응이 영 좋지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글이라는 것은 나 혼자 만족하자고 쓰는 것이 아니고 독자들에게 주는 영향과 반응도 있으니까요.
이 글의 맨 첫문단에서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라고 시작해서 다소 엉뚱하게도 저의 젊은 시절의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고야 말았네요. 본래 쓰려고 했던 주제는 올해 읽은 책이 평소보다 특별히 많은 103권이었다는 내용인데 관련 (독서관리) 앱추천까지 하려고 했어요. 2022년에 관한 이야기이니 조만간 빨리 써야한다는 개인적인 압박감도 살짝 있네요. ㅎㅎ
내친 김에 저의 30대와 40대에 여러 권의 책들을 쓰고 내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함께 풀어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지금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상들은 책내기에 관한 글을 쓰자니 '내 인생 스토리가 되겠네' 로 이어지네요.
올해 읽은 책 중에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님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가 있었는데요. 전업작가로서의 처절한(?) 삶을 느끼며, 또 나름 글쓰기가 직업의 일부(전업이라기 보다는)인 사람으로서 너무 공감가는 제목입니다.
글쓰기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기도 하는 요즘이지요.
강의를 하든, 마케팅을 하든, 블로그는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는 유튜버를 하더라도 그 바탕엔 글쓰기로부터 시작되는 작업이라고요. 글을 별로 써보지 않았다면 많은 분들이 막연히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글쓰기이기도 한 듯합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해보지 않았기에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 전용석, <아주 특별한 성공의 지혜> 중 한 구절 (제가 쓴 첫번째 책입니다 ^^)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쓴다' 는 김호연 작가의 말과 행동처럼, 물론 글쓰기에는 약간의 타고난 자질이 필요하겠지만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이듯이) 어느 정도 두려움과 어려움 없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