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풀어 쓴 노자 도덕경(19)] 52장 천하유시 天下有始 - 천하에 시초가 있기에
52장 천하유시 天下有始 - 천하에 시초가 있기에
"천하에 시초가 있기에 천하의 어머니(근본)가 된다.
이미 그 어머니를 얻고 나서 그 자식을 알고, 이미 그 자식을 알고 나서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그 (지식의) 구멍(감각기관)을 막고, 그 (지식의) 문을 닫으면, 죽을 때까지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그 구멍을 열고 그 일을 해나가려 하면 죽을 때까지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명明' 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强'이라고 한다.
그 빛(光)을 사용하면,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가야 자신에게 재앙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습상習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자는 도道에 대하여 어머니, 암컷, 골짜기 등으로 자주 비유했다. 근원이자 도道인 어머니에 대비해서 자식이란 세상에 드러나 보이는 현상계, 물질계를 의미한다. 어머니를 얻고 나서 (도와 하나됨) 자식을 알고 (세상을 알고 - 처세와 치세), 그 자식을 알고 나서 다시 어머니를 지키면 (처세와 치세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도를 지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 더 나아가 죽고 나서도 위태롭거나 괴롭지 않을 것이다( *51장의 해설을 참고).
감각기관을 막고 지식의 문을 닫으라는 것은 도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의 중요한 방편을 의미한다. 노자 도덕경 12장에서의 정념(正念)/사띠(sati) 부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구멍을 열고 일을 해나가려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일 처리 방식으로 세상 일을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구제란 구원이라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인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고, 이런 생로병사를 끝없이 반복하는 괴로움으로부터 구원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수행을 통해 도와 하나 되면 죽기 전까지 남은 생에 세상 일을 해나가는데도 위태롭지 않고 죽고 나서도 편안할 것이다.
* [12장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 다섯 가지 색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
이렇게 보면 붓다와 노자의 가르침은 불이(不二) 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다만 노자의 가르침은 다소 추상적이고 세상에 관여를 많이 하고 있으며, 불법(佛法)은 - 초기경전의 붓다의 직접 가르침을 의미한다 - 수행에 있어서 훨씬 더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측면 (치세와 처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빛(光)은 다소 물리적인 현실세계의 빛에 가까운 표현이다. 대조적으로 밝음(明)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빛에 의한 밝음이기보다는 이치적인 밝음, 더 나아가 영적인 빛과 밝음에 가깝다. 깊은 명상에 들수록 작은 것, 아주 미세한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평상시의 의식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현상계는 거칠다. 반면에 깊은 의식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모든 것은 부드러워진다.
선정(삼매, 사마디)에 들어가면서 호흡과 의식이 부드러워지면 종종 빛(光)의 형태로 표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를 빨리어로 니밋따(nimitta)라고 부른다. 표상(nimitta)이라는 표현 그대로 더욱 깊은 선정에 들기 위한 지표 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위에서 번역된 도덕경 52장의 문장들은 조금 더 매끄럽게 수정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 빛(光)을 사용하여,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가야 자신에게 '재앙'을 남기지 않으니,
이것을 습상習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밝음, 곧 도道로 돌아가야 '재앙', 즉 계속 반복되는 생의 괴로움을 다시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에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가야' 라는 표현을 눈여겨보자. 만물은 그 어머니인 도로부터 나왔으니, 우리는 도道, 그리고 밝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이 틀림 없다. 그러므로 '다시' 밝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습상習常 이라는 표현은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보림保任과 점수漸修 를 떠오르게 한다. 그저 상常 - 항상 도와 하나된 경지 - 이 아니라 굳이 습상習常이라 하였다. 상常을 온전히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보림이란 '안으로 자성이 어지럽지 않게 잘 보호하고, 밖으로 경계에 부딪쳐 유혹 당하지 않는다' 는 의미를 갖는다. 즉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일환으로써 깨달음은 단박에 얻지만 그 이후에도 닦아나가야 할 수행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관점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이는 깨달음 이후에는 더 닦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습상習常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노자는 돈오점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세간에서 돈오점수니 돈오돈수니 왈가왈부하는 일들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유명한 일화인 '독화살의 비유' 처럼 독화살을 맞았는데 누가 쐈느니 하는 것을 따져보기 보다 당장은 화살을 뽑고 독과 상처를 치료할 일이 급하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 수행에 임하고, 정진하여 도와 과를 이룬 후에야 점수가 맞는지 돈수가 맞는지 따져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 明濟 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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